라스베가스 한인회 초청 연극 ‘품바’ 공연을 보고 신문 기사를 쓰고 나니 제 생각은 온통 연극뿐입니다. 젊은 시절 돌아다녔던 동숭동 대학로의 수많은 소극장, 뒷골목들, 수많은 음식점. 그리고 문예회관,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이야기들. 모두가 그리운 것들입니다. 요즘 같이 초겨울 싸늘한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한국에서 한 편의 연극에 출연했으며 네 편의 연극에 무대음악을 맡아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무대음악을 맡았던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1991년 서울연극제 대상을 받았고 그 이듬해 정부 지원으로 뉴욕, LA 공연을 했습니다. 조만호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며 대학교수로 최근 자신이 근무 하는 대학의 예술대학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979년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처음 근무했던 서울의 모 여자중학교에서 국어과 교사였던 그를 만난 것은 제 생애 큰 행운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아 매일 문학과 연극과 음악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대학 때부터 연극 연출을 해 왔고 교사로 재직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연출 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1986년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퀸터 아이히의 ‘꿈’이라는 작품을 연출할 때 제게 무대음악을 부탁해 와 저는 난생처음으로 연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후에도 두 작품의 무대음악을 더 맡아 작업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제게 포르투갈 작가 노르베르또 아빌라의 ‘하킴의 이야기(AS HISTORIAS DE HAKIM)’라는 연극 작품의 주인공 하킴 역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연극이 좋아 연극 관람을 위해 극장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연극 공부를 전혀 안한 저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극 중 인물 하킴은 연극 공연 2시간 중 1시간 50분가량 등장하는데, 피리를 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칼리프 독재자를 통렬하게 조롱하는 풍유시인입니다.
간청에 못 이겨(내심으로는 기뻐하며) 승낙을 하고 저는 그날 서점으로 달려가 스 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 이근삼의 연극개론 등 연극 관련 책을 몇 권 사와 며칠 동안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드디어 연습 첫날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력이 있는 배우들이었지만 저 혼자만 말 그대로 초짜였습니다. 첫날엔 리딩(대사 읽기)만 했습니다. 연습이 끝 나고 연출자와 둘이서 호프집을 갔습니다. 연출자가 한참을 심각하게 있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배형 그렇게 하지 마세요. 배형은 연극 공부를 전혀 안 한 사람이기에 연기를 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배형은 연극을 잘하기에는 이미 틀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연극이지만 연극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평소 우리가 만나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던 그 일상의 모습으로 표현하세요. 극중 하킴이 내가 평소에 본 배형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꼈기에 출연을 부탁한 것입니다. 공연의 모든 것은 연출자인 내가 책임집니다. 무대 위에서 배형은 마음대로 하세요.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그런다고 그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수십 년 해 왔던 그 사투리 그냥 그대로 하세요. 그 대신 공연 시작 3분 후에는 관객들이 배우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잊도록 연기에 몰입하세요.”
처음 그 말을 들을 땐 머리 뒷부분을 무언가로부터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그러나 그 후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연습했고 그리고 공연을 했습니다. 다행히 공연은 잘 마쳤습니다. 1989년 7월 1일부터 16일까지 비원 옆 공간사랑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15일간 총 21회 공연을 했는데 공연초부터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하긴 120석 남짓한 소극장이었기에 저의 친구와 제자들, 합창단 관련 사람들, 그리고 같은 교회 교인들이 저의 이 외도를 지켜보기 위해 몰려왔으니 극장은 항상 만석이었습니다. 당시 대학로 소극장에도 관객이 많지 않을 때였기에 이 연극은 포르투갈 작품, 한국 초연, 이상한 배우(?) 등의 이유로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날 연습 첫날 연출가가 제게 했던 말은 공연 기간은 물론 지금까지도 저의 마음 에 교훈으로 남아 저의 생각과 행동 전체를 지배합니다. 제가 1998년 라스베가스 서울합창단과 2013년 힐링콰이어를 창단할 때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노래 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합창을 잘하기엔 이미 틀린 사람입니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힘쓰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하세요. 모든 것은 지휘자인 제가 책임집니다. 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두 단체는 저의 요구에 따라주었기에 서울합창단 14년 동안, 힐링콰이어 2년 반 이상을 우리는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이 즐겁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는 거 참 쉽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우리가 잘 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우린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황홀한 계절에 내가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오늘도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2015.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