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맞이했습니다.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하이스쿨을 졸업한 자녀가 대학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나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어머니는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걱정스럽고 서운한 마음에 식욕도 잃고 밤에 잠도 설치며 홀로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입니다. 가을이 문턱까지 다가와서 그런지 지난주 저희 신문 10페이지 ‘게시판’에는 종래에 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내용의 글들로 채워졌습니다. ‘대학 입시 세미나 개최’ ‘자녀 양육 세미나 개최’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모집’ ‘문화교실 가을 학기 학생모집’. 게시판의 행사 안내글만 봐도 올가을엔 왠지 풍요롭고행복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이민 가정이 자녀 교육을 이민의 첫 번째 이유로 꼽습니다. 저희 가정 또 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중등학교 교사를 20년가량 했고 저의 두 아이가 미국에서 7학년 때부터 공부를 했기에 한국, 미국 두 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해 가끔 저 나름대로 비교를 해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식의 교육 문제만 놓고 본다면 미국 이민은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저의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최근 한국사회가 크게 염려하고 있는 ‘캥거루족’에 관한 보도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캥거루족이란 졸업 후에도 취업하지 못한 채 계속 부모 신세를 지고 있는 젊은이들 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캥거루의 특이한 생태를 빗대어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약80cm~1.6m 크기의 캥거루가 들판을 달리는 모습은 한국인들의 눈에는 멋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캥거루는 태반이 약해 크기 약 2.5cm, 몸무게 약 1g의 미성숙한 상태의 새끼로 태어납니다. 그 후 6개월~1년간 육아낭에서 성장한 뒤 비로소 독립합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8월 13일 발표한 2010∼2011년 대학 졸업자 1만7376명을 조사, 분석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1.1%가 캥거루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조사대상자 중 35.2%는 부모와 함께 살기는 하지만 용돈을 주거나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경제적 의존도보다는 주거 의존도가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또 10.5%는 부모와 같이 살면서 용돈을 받고 있고 5.4%는 부모와 따로 살면서 용돈을 받습니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14%가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캥거루족의 34.6%는 직업이 없었고 14.7%는 임시직, 3.1%는 자
영업자였으며, 상용직은 47.6%로 절반에 육박했지만 원하는 직장의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은 19.5%에 그쳤습니다. 전공별로는 교육계열(55.5%), 인문계열(52.3%), 공학계열(43.0%), 의약계열(31.5%) 순으로 캥거루족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캥거루족이 어른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일종의 ‘피터팬증후군’이라고 설명합니다. 피터팬증후군은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러 박사가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캥거루족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신조어로는 빨대족, 자라족이 있습니다. 빨대족은 30대 이후에 독립하지 않고 부모의 노후자금을 빨아먹고 산다는 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말이고 자라족은 자립할 시기가 되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부모라는 단단한 방어막 속으로 숨어버리는 젊은이들을 빗댄 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교육을 칭찬하고 부러워합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그렇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겉모양만 보았지 그 속사정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인 듯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3시간을 자면 살고 4시간을자면 죽는다’는 각오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본인의 적성이나 비전과는 상관없이 오직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꽉 찹니다. 모두가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전공과는 상관없는 취업준비입니다. 대학만 들어가고, 대학만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미의 육아낭 속 캥거루처럼 움츠리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한국 청년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미국이 낙원이 아닌 것은 압니다. 미국 교육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아직은 개개인의 창의력과 다양성과 자유의지가 살아있는 곳이 미국입니다. 새 학기를 맞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말을 심어줍시다. 결코, 캥거루족이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2015.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