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농담이 있다. “아이 양육 점수는 가정부 300점, 엄마 200점, 할머니 100점.” 혹은 “100점, 50점, 0점”이라는 더 직설적인 변주 표현도 있다. 웃으며 넘기기 쉬운 이야기지만, 이 말은 인간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가정부는 아이의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조절하고, 어머니는 필요를 위해 원하는 것을 제한하며, 할머니는 가능한 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려 한다.
결국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만족하게,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 것이다.
이 구조는 가정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인간 관계 전반에,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대상에게 호감을 느낀다. 특히 SNS와 이미지 중심의 현대 사회 환경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분명해 진다. 많은 ‘좋아요’를 받는 말들은 반드시 필요한 말 보다 듣기 좋은 말인 경우가 많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쉬운 방법이다.
여기에 더해 현대 사회는 관계의 속도까지 요구한다. 짧은 시간 안에 신뢰를 얻고 좋은 인상을 남기며 영향력을 넓히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읽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 강조된다.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 하는 것이 필요한 지혜이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 사회의 영역에서도 이제 쉽게, 민망하지 않게,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구조 속에서,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기대를 자극하는 말들이 더 큰 효력을 갖는다. 마치 늑대가 양의 탈을 쓰고 “당선되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풍자처럼, 공동체의 건강보다 듣기 좋은 약속을 앞 세워, 사람의 마음을 우선 얻어내는 상황들이 적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원하는 것을 주거나, 적어도 그렇게 해 줄 것처럼 말하면 관계는 쉽게 가까워 질 수 있다.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고 갈등을 줄이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수 있고 관계는 부드러워 진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원하는 것만 얻는다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제한이 필요하고, 때로는 듣기 불편한 말을 들어야 하고, 어려운 과정을 겪을 수도 있다.
그 역할을 위해, 그 표현이나 자세가 무례하거나, 차갑거나, 공포적 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만족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기다림과 절제, 때로는 거절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럴 때, 종종 ‘아마추어적 섭리’로 서둘러 해결 해 주려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이루시려는 뜻을 대신하지 않도록 조심 스럽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바르게 세워지도록 돕는 일은 신비한 일이다. 사랑은 오해를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외면을 경험할 수도 있으며, 즉각적인 보상을 받지 못 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의 영혼을 바로 세우고 삶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이러한 ‘불편한 사랑’을 연습해야 한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막 9:50). 때로는 침묵하기보다 할 말을 해야 하고, 때로는 친절을 베풀기보다 침묵해야 하며,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절제해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람들로부터 좋은 점수만 받으려 할까, 사람들의 마음 만 얻을까 늘 스스로 경계 할 필요가 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라 고 선언했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을 넘어, 관계의 중심이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때로는 내가 앞에 나서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중보하며 지켜보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일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 맺는 관계가 귀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이루실 일과는 비교 할 수 없다.
우리가 다 알아 볼 수 없는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고, 세움 받고, 인도받음이 너무 너무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