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 배상환

December 11, 2025 by KCN

저는 미국을 좋아합니다. 제가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양한 문화가 인정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사회, 서로가 서로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건드리지 않는 사회, 자기 즐거움을 자기 스스로 찾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저 언제나 남들이…,남들이…, 남들이…, 하면서 나의 인생은 없고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껍데기만을 가꾸며 산다면 한 번뿐인 인생을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같이 사는 것입니다. 자리에 앉았다 하면 주변 사람과 남의 가정, 직장, 단체, 교회 등을 흉보는 사람치고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직장, 단체, 교회에 소속된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젠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내가 좋아하는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인생은 짧습니다. 해가 바뀌는 듯하더니 벌써 4월이 다 끝나갑니다. 아마 곧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고 크리스마스와 함께 송년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도 그것을 전공하였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청소년이 그랬듯이 저 또한 팝송도 즐겨들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제가 라스베가스로 처음 이민 왔을 때 신기한 것 중의 하나가 70년대 한국에서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를 이곳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프 랭크 시내트라, 톰 존스, 폴 앵카 등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큰 즐거움이요 기쁨이었습니다. 한 번은 하드락 호텔에서 열린 산타나의 공연을 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대극장 공연과 달리 무대 앞에 칠십 대의 산타나와 비슷한 연령의 반백의 청중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환호했습니다. 60, 70년대 공연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약속을하고 다시 모인 듯했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반쯤 하얀 머리카락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는 구분이 어려워 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 50년전으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공연을 보고 돌아와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저렇게 평생을 살아가는데 우리 한국인은 왜 늘 새롭게 유행하는 음악에 밀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잊고 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부터 한국에도 7, 80년대에 유행했던 ‘7080 음악’이 되살아나 장년, 노년들이 즐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주 라스베가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 내 공연장 ‘House of Blues’에서 있었던 한국의 힙합 가수 박재범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기획사 AOMG 가수들의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제게 힙합 관람은 외도, 탈선, 큰 모험이었습니다. 혹시, 육십 대 할배(?)가 입장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가지고 공연장에 갔지만, 다행히 입장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힙합(Hip hop)은 1970년대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생겨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랩과 레코드의 스크래치, 마치 곡예와도 같은 격렬한 동작의 브레이크 댄스가 가미된 새로운 감각의 댄스 음악입니다. 1990년대 들어 이 힙합은 전 세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음악은 물론 댄스, 패션, 액세서리 등 여러 부문에서 보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날 있었던 힙합 공연은 젊은이들의 축제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노래 같지 않고, 춤 같지 않고, 음악 같지 않았던 그것이 그들에게는 완벽한 조화였으며 완전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형식과 관습과 상식을 뛰어넘어 자유와 창의력과 개성이 살아있는 완벽한 그들만의 문화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힙합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젠 남의 문화에 관해 함부로 얘기하고 평가하는 것을 삼가야겠습니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말 가운데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전봇대를 들고 낑낑거리며 힘들어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냥 둡시다. 아마도 전봇대를 이쑤시개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맙시다. 청결을 위해 칫실 사용을 권하지도 맙시다. 야박하지만 나의 건강이나 잘 챙깁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음악을 좋아합니까? 미국의 노년층이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즐기듯, 젊은이들이 힙합을 찾아 즐기듯, 우리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을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와 삶을 찾아 즐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16.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