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
명동 성당 밖 입구 계단 우측엔 간이 텐트를 치고 언제까지 갈 지 모르는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머리를 빡빡 밀고 섬찟한 뻘건띠를 이마에 두르고 일렬로 질서있게 앉아 있는 사람들 대우 중공업 노조 데모대였다.
“노동자는 봉이 아니다.”
“우리에게 전원 복직을…. 기업주는 각성하라.”
“무능한 김.영.삼 정부는 물러가라!”
주말에 명동인파는 파도처럼 구름같이 몰리는데 지나는 인파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쥐고 외쳐댄다. 데모하는 사람들, 가족까지 동원 안타깝게 호소하며 시민들에 동정을 구한다. 맞은편 건물 앞엔 만약의 사태에 대비 중부경찰서 보안과장과 사복형사 그리고 몇소대의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성당 안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데모대 앞에 놓인 커다란 모금함에 천원짜리 한 장씩을 넣어 주고 바삐 도망치듯 뛰어간다.
우리와 저들은 모두 같은 절박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저들은 왠지 측은해 보였고 더욱더 초라해 보이는 것은, 저렇게 날마다 불편하고 차디찬 멘바닥에 텐트를 치고,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면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무모할지도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일까? 과연, 정부에서나 기업에서 친히(?) 나와 저들을 위로해 주고 격려하면서 손을 내밀어 줄까? 라는 것이다. 그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 호소키 위해 사람 많이 모이는 명동성당을 택한것 같다. 을시년스러운 저녁 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구질 스러운 밤. 카톨릭 병원 입구 마리아상은 그들의 슬프고 가엾은 처지를 아시는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양쪽으로 벌리신 두 팔로 이들을 안아 주실지?
“심장병 앓는 어린이는 도웁시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도웁시다.”
기타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노래로 메시지를 전하는 유명가수. 어떤 때는 두 사람이 어떤 때는 혼자서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의미를 갖고 열심히 목청을 돋워 운다. 아침엔 데모대의 절규하는 외침, 저녁엔 가난한 이웃을 위한 모금을 위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제각기들 열심이다.
다시 밝아온 명동의 아침. 일요일이라 그런가? 다른 날보다 조금 숙연한 분위기다.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성당 안은 성가대의 찬양송이 울려 퍼지고 하나 둘 성호를 긋고 입장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의식대로 신부님은 어린 사제들과 입장, 많은 성도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 제1낭독, 제2낭독이 끝나고 특별히 시국강연차 이곳을 들른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이어진다. 성도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정도로 감명 깊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그 어느때보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정치지도자를 비롯해 기업인들 모두가 이제는 깊이 반성하며 불쌍하고 길 잃어 헤매는 양떼를 돌보듯이 나라를 걱정하며 국민의 어려움을 깊이 헤아릴 때입니다.”
그시간…. 명동 성당 밖 입구 계단 우측, 어제보다 그 수가 더욱더 늘어난 가운데 불안한 징조가 보인다. 잠시 후, 데모 진압 기동타격대를 태운 3대의 버스가 좌, 우 통행로를 막고 우르르 하차함과 동시에 일사분란 일렬종대로 열 지었다. 지휘자가 명령을 내린다.
“전원 해산시킨다. 듣지 않는 자는 전원 구속, 돌격!!”
텐트를 강제로 잡아당겨 내동댕이 치고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사정없이 끌어낸다. 조금의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전경버스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우린 복직을 원할뿐이다.”
“악덕 기업주 처벌하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
옷도 찢기고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내지르는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외침은 무자비한 전투경찰이 휘두르는 폭력적인 진압 속에 그렇게 묻혀 버렸다. 지나가던 시민들마저 안타까움에 울어야 했고, 그 순간 하늘도 울었을 것이다. 성당 안에서는 추기경님의 집전미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정치인들이나 기업하는 사람 모두가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풀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그런 사회가 하루 빨리 올 수 있기를 우리주 천주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중부소방차 한 대가 강한 물줄기를 뿜어대며 한 눈에도 진압과정이 굉장했음을 보여주는 성당입구 계단을 서둘러 청소하기 시작했다. 언제 그 끔찍한 일이 있었느냐는 듯 예전처럼 밝은 표정의 시민들이 그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땡그렁-! 땡그렁! 성당의 종소리가 꼭 그 영혼들의 울부짖음같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