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 밀사 : 붉은 모래 언덕 3 - 주현식

October 22, 2025 by KCN

“딸가닥”…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온 안지영 사범은 오늘 따라 왠지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던 귀에 익은 다정한 목소리들이 오늘따라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치- 나도 외롭다는 생각을 다하네….” 혼자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에 씻고 나오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이 나아지는 듯싶었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베란다로 나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녁인데도 마치 대낮을 보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할만큼 이 곳의 밤은 어둡지가 않다. 수천, 아니 수만개의 가로등과 네온들이 이곳의 거리 곳곳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달리면 고작 2-3분 거리에 달력에서나 보았음직한 근사한 해변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이 나라의 왕궁이 내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못할만큼 넓고 높은 담으로 둘러쌓여 있는 것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이 곳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전용
빌라촌의 모습이 보인다. 이 빌라촌 안에는 정말 빼고는 아니,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같은것만 빼고는 다 있다고 말할 정도로 호화롭고 빼어난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다른 사범들이 단층빌라나 개인 주택식 집을 얻은 반면 혼자만 아파트를 고집한 안지영사범은 이사 오던 날 저녁 이 베란다에서 눈에 비춰진 전경을 보고 “내가 고르긴 잘 골랐군.” 이렇게 말했다.
방으로 돌아온 안지영은 메일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한국의 안기부 요원들의 크고 작은 전달사항들이었고 이곳 아부다비 북한대사관 요원들의 사진과 프로필들이었다. 아부다비시내 북쪽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동시수교로 가끔 그들을 해변에서 식당에서 공공기관시설에서 심지어는 골프장에서도 지나치곤 했다. 이미 사진들로 낯을 익힌 안지영은 제일 먼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거의 생활을 같이 하다시피 하는 사범일정 때문에 안지영은 거의 밤시간을 이용 북한대사관을 중심으로 자료와 사진들을 수집했고 그 귀한 자료는 한국의 안기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 한국대사관엔 이 곳에 파견된 다섯명의 태권도 사범들의 환영리셉션이 열렸다. 중요 한인교민들과 아부다비 국방부 차관인 압둘라 하사나, 그의 수행원들과 도착했고 그 외 다수의 중요인사들이 초대된 규모가 제법 큰 행사였다. 그래서인지 경호부대의 군인들이 다수 동원되었고 일체의 외부인사는 출입이 통제되었다. 잠시 후 목사님 내외와 자녀들을 태운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붉은 카펫 위로 들어왔고 이어 주인공들인 사범들이 속속 도착했다. 대사관은 개인주택을 개조한 듯 생긴 주변경치가 빼어난 건물이었다. 널찍한 정원을 사이에 두고 커다란 연못이 있었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미술조각품이 한껏 뽐내고 있었다. 이날 행사는 정원에서 진행됐으며 모든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 쪽에서 손님맞이가 한창인 시각, 다른 한쪽에선 호텔에서 초빙한 12명의 요리사가 각가지 진귀한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랍인들이 나누는 코 인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동재 대사와 부인 채영옥 여사.
“여보 오늘 당신 빨강넥타이가 잘어울리네요.”
“허허…내가 해서 안 어울리는 게 있나?”
일찌감치 나와 손님맞이에 한창인 이대사 부부는 금슬이 참 좋아보였다.
“사범일행이 도착했습니다.”
대사관 직원 한 명이 알려주었다.
“음…도착했다는군.”
이 대사가 고개를 돌려 정문을 보았을 때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에 하나같이 미남형들의 사범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역시 뽑을때 애좀 먹었다고 하더니만 정말 폼나잖아? 사내들이 저래야지. 음, 좋아 좋아.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구만…허허허”
이 대사는 사범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잘 오셨습니다.”

이 대사가 직접 손을 내밀어 반가움을 표시했고 직접 자리까지 안내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한 사람씩 악수를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하니 그 우렁찬 목소리에 한순간 시선이 집중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목사님 내외도 이 대사 내외와 인사를 한다. 하지만 두 부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라 격의가 없어보인다. 흰 모시로 된 개량한복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김목사 부인 최화자씨는 비록 한복에 가려보이지는 않지만 동양적인 미인상에다 몸매도 좋고 매너가 좋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