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 밀사 : 새로운 나라로 - 주현식

October 22, 2025 by KCN

<새로운 나라로>

황장엽(72세)
북한 최고 인민상임위원장. 초대 김일성대학교 총장역임. 권위 있는 공산당 최고 이론가이며 김일성부자의 최측근 핵심 혁명 주도 세력가. 남부럽지 않은 최고 대우를 받고 있으며 김 부자 다음으로 추앙 받는 인물. 그런 거물급 인물인 황장엽씨가 외교경로를 통해 귀순의사를 밝힌 후, 안기부에서는 다각적인 경로를 통해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자 사전에 모든 준비와 계획을 세워 놓은 실정이다. 그간의 많은 귀순자 중 가장 고위급 인사이며 북한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권력의 위치의 사람이라는 것이 안기부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만약 귀순을 한다면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올 엄청난 정보들이 있을 거라 확신. 대통령으로부터 극비임무를 받은 상태인 것이다. 중동의 아랍에미레이트를 그들의 중간 기착지로 정하고 중국 북경에서 홍콩-싱가폴을 경유 아부다비에서 우리 대한항공 전용기로 안전하게 귀순시킨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당시 아랍에미레이트는 남. 북한 동시 수교국인 동시에 한국대사로 황장엽씨의 처조카인 이동재씨가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태권도 사범 중 유일하게 안기부 특별요원인 안지영은 이동재 대사와 협력 북한대사관 직원을 따돌리게 안전하게 귀순을 돕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공산당 이론의 아버지격인 황장엽씨는 과연 왜? 귀순의사를 알리고 그들을 배신하려 하는 것일까? 위장귀순이 아닐까? 아니면 혹은 잘못된 오보가 아닐까?


한국정부측에서는 다각도로 검토하고 모든 채널을 통해 그 내심을 알고자 노력하던 중, 확실한 귀순의 뜻을 알게 되었고 그 실행에 모든 인원을 동원, 연일 큰 회의를 거듭하며 만반의 준비상황을 끝낸 상황이다. 중국최고인민위원 상무 국원인 (왕친텐)의 초청으로 1996년 9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회담 차 만나기로 함. 황장엽씨의 일행은 모두 22명. 황장엽씨의 회의 참석하기 두달전쯤을 행동개시일로 정하였다. 이미 대한민국 안기부 특수요원은 세계적으로 숨은 공적이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태이며, 이미 미국 CIA와 협조체계도 합의를 보고 있을 정도로 국가에 위신과 총체적인 분위기 쇄신을 위해 모든 지원을 받고 있는 단계였다.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변화하는 세계정세와 긴장대치하고 있는 남한과의 연결을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키로 했다는 외신을 접한 남한측에서는 긴급히 이홍구 부총리에게 지사를 내려 북한을 가기전 남쪽을 먼저 방문해줄 것과 그에게 남쪽의 친서를 전달, 김일성 주석과 세기의 회담을 추진시켜 줄 것을 요청하려 노력한 결과 흔쾌히 허락한 지미카터 전 대통령은 그 친서를 갖고 북경을 통해 북한을 방문, 김일성 부자와 평양인민대궁전에서 극적으로 만남을 갖는다.

북측에서도 별다른 거부 없이 정상회담을 못할 것이 없다고 실무진을 구성 남측과 머리를 맞대고 방문장소, 인원, 경호문제 등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반세기 걸친 모두의 숙원 남북통일을 위한 첫걸음이 될 실무자급 회담은 첫날부터 흥분된 가운데 팽팽하기만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회담장소를 “평양”으로 고집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그가 고령인 점을 감안 양보를 했다. 남측실무대표로는 이홍구 부총리가 북측실무대표로는 김용순 대표가 1994년 6월28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첫만남을 갖는 등 전세계에 눈이 이곳으로 모이는 대단한 시작이었다. 출발부터 서로 손을 잡고 “잘해봅시다” “그래야지요.” 말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고 국민들의 목소리였다. 호탕하면서도 걸죽한 타입의 카리스마 노독재자 김일성주석과 25살의 나이에정치에 입문한 정치9단, 팽팽한 성격의 소유자인 김영삼 대통령… 단독회담을 가져도 일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대화하자는 남측의 제안과 신문기자 등 보도진들 80여명이 북한을 방문함을 원한다고 하니 800명이라도 그 숫자는 문제가 안된다고 무척 관대함을 보였던 김주석… 하지만 갑작스러운 김주석의 죽음으로 금세기의 정상회담은 무산되어 어쩌면…하며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남북한 통일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편 김정일 체계로 후계자의 향방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고 어떻게 북한과의 문제를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해 남측은 연일 비상사태 선포 후 촉감을 곧두세워 온갖 정보를 동원하는 가운데 예상대로 황장엽씨 일행은 차질없이 북경으로 떠나게 될런지…초조함이 팽배할 때였다. 노구에 몸을 끌고 남쪽으로 귀순망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만을 아니라는 것은 아마도 황장엽 본인 스스로가 잘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비서 김덕만씨는 그의 오랜 보좌를 통해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현 상황이라면 그가 더 이상 북한에서 한물간 세대로 차기 지도자인 김정일에게는 불편한 존재로 보일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각기 등을 대고 사무실에서 깊은숨을 내쉬며 최종적으로 담판 아닌 담판을 짓고 있었다. 초라한 노년을 보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곳을 저버리고 이 나이에 모험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실로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둠에 짙게 깔린 평양거리를 내려다보며 긴 담배연기만 뿌려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