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칠월 칠석이 다가오면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생각난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진 두 사람이 일 년에 단 하루 만나는 날. 까마귀와 까치가 날아와 서로의 몸을 이어 오작교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마음에도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면 얼마나 보고 싶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나는 고향을 떠나 태평양 건너 알래스카에서 살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민자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은하수가 하나 흐르고 있었다.
알래스카에서 한국은 참 멀다. 마음으로는 금방 달려갈 것 같은데 막상 가려면 비행기를 몇 번 타야 하고 긴 시간을 날아가야 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번에는 꼭 갈게”라고 말하지만, 일에 쫓기다 보면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된다.
우리 알래스카 한인들도 어쩌면 현대의 견우와 직녀인지 모른다.
다행히 요즘은 까치와 까마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전화 한 통이면 서울과 앵커리지가 이어지고, 영상통화를 켜면 태평양 건너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도 있다. 견우와 직녀가 지금 세상에 살았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일 년을 왜 기다려? 영상통화하면 되잖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편리해졌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더 바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를 갈라놓는 은하수는 거리가 아니라 바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알래스카의 밤하늘에는 때때로 아름다운 오로라가 춤을 춘다. 초록빛과 붉은빛이 긴 띠가 되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문득 생각한다.
“저것이 알래스카의 오작교가 아닐까.”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듯, 우리도 그 빛의 다리를 건너 고향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원의 고향 산천도 보고, 그리운 사람들의 손도 잡아보고 싶다. 그러나 돌아보면 오작교는 반드시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알래스카 땅에서 서로 김치를 나누고, 아프면 안부를 묻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웃어주는 우리 한인들의 정이 바로 오작교였다. 먼저 온 사람이 새로 온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쳐 주는 것도 세대를 이어주는 작은 오작교다.
칠월칠석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전설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읽게 된다. 사랑이란 반드시 매일 함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멀리 있어도 잊지 않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올해 칠석에는 알래스카의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싶다. 오로라가 나타난다면 마음속으로 그 빛을 따라 고향까지 걸어가 볼 것이다.
그리고 오래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
“잘 지내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하수를 건너는 데는 거창한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먼저 내미는 따뜻한 마음 하나, 그것이 우리 인생의 오작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