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 웃프다 - 배상환

August 13, 2025 by KCN

‘웃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웃기다’와 ‘슬프다’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즉, 웃기고 슬프다, 웃기지만 슬프다, 웃음이 나오지만 곧 슬퍼진다라는 단어로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런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웃프다’는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웃고는 있지만, 결코 좋아서 웃는 것 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웃고 있지만, 가슴 한쪽은 슬프다는 뜻입니다. 마음 한구석 으로는 울고 있다는 뜻입니다. 뭔가 웃기면서도 슬퍼지는 그래서 씁쓸하고 허무한 그런 말입니다.


‘웃프다’라는 말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풍자해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자신의 사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국립국어원이 국내 대중매체 139개를 조사해 새로운 낱말 334개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을 엮어 ‘2014년 신어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 이 자료에는 사회용어, 경제용어, 감정용어 등 다양한 분야의 신조어가 담겨 있습니다. 2014년 신조어 가운데 특히 많이 나타나는 것이 생선(생일선물), 김냉(김치냉장고), 열폭(열등감 폭발), 고터(고속버스터미널) 등의 줄임말과 특정 무리를 지칭하는 ‘~족'( 族 ), ‘~남'(男), ‘~녀'(女) 등의 단어인데 이 두 종류가 전체 신조어의 27%(92개)를 차지했습니다.


신조어 중에서도 가장 새롭게 눈길을 끄는 것이 직장, 채용시장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취업의 문이 점점 좁아지자 취업 준비생의 허탈한 마음을 담은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습니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세)이 10.2%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전반적인 실업률은 3.9%로 지난해 수치와 같지만 청년실업률은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9년 6월 이후 최고치로 올랐습니다. 이처럼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한 단어로 한때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
지만, 요즘은 이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을 포기했다면 그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큰 절망입니다. 이것 말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다면 그것은 희극(Comedy)입니다. 분명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입니다. 블랙 코미디란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에 대해 잔혹하거나 통렬한 풍자와 반어를 내용으로 하는 연극을 말합니다.


‘웃프다’라는 말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고는 하지만 나라를 떠나 국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우리 이민자의 삶의 모습과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영어를 잘 못하기에 수없이 웃음으로 때웁니다. 그저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하는 심정으로 헤프게, 비굴하게 웃습니다.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의 가사 일부처럼 뜻 모를 이야기를 듣고서도 우린 그저 웃습니다. 참으로 슬픈일입니다. 웃프다의 극치입니다. 얼큰한 육개장이 먹고 싶어도 햄버거를 씹으며 “하우 아 유!”를 외칩니다. 분명 세탁물을 맡길 때부터 옷에 흠이 있었는데 그것이 세탁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우기는 백인손님에게 영어로 설명하지 못해 옷값을 물어줄 때도 우리는 웃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웁니다. 참 웃픕니다.


‘웃기다’라는 말은 남을 웃게하다, 남을 즐겁게 한다는 말입니다. 웃기는 것이 꼭 희극 배우의 일만은 아닙니다. 나는 언제 남을 웃겼는가? 한 번쯤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나는 고상한 인격자로서 남을 웃기는 그런 유치한 짓은 절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 웃기는 사람입니다. 남을 웃길 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많은 젊은이가 절망 중에 있는 한국은 물론 우리 이민 동포사회에 ‘웃프다’ 대신 ‘웃기다’와 ‘기쁘다’가 합쳐진 ‘웃쁘다’라는 말이 유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틈만 나면 웃기고 기뻐하는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이 짧다는 것 모두가 다 압니다. 인생이 별거 아니다는 것도 모두가 다 압니다.
11월이 되니 이러한 것들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또 한 해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2015.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