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보이 잡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플레이보이 잡지를 안 본 남자 있습니까?”
지난 11월 초 창간 62년이 된 잡지 플레이보이가 “내년 3월호부터 누드 사진을 게 재하지 않겠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착잡(?)하게 했습니다. 하긴 컴퓨터 클릭 한 번이면 수많은 누드와 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구태여 잡지에 실린 누드 사진을 찾아볼 만큼 현대인들의 생활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은 듯합니다.
1950년대 ‘에스콰이어’ 잡지의 카피라이터 휴 헤프너는 회사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옮기자 실직을 했습니다. 그는 직접 잡지를 창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때가1953년 봄이었습니다. 헤프너는 당시 영화 ‘이브에 관한 모든 것’과 ‘나이아가라’ 등 으로 일약 할리우드 최고 섹시스타로 떠오른 메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을 손에 넣고 그해 11월 먼로의 사진을 표지로 한 플레이보이를 창간했습니다. 먼로의 누드 사진은 속지에 실었습니다. 창간호는 5만4천 부나 팔렸습니다. 광고와 홍보없이 신생지가 거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출간 3년 만인 56년 플레이보이 발행 부수는 월 110만 부로 폭등했으며 매출은 35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72년 11월 720만 부까지 발행되던 플레이보이가 2015년 6월 말 현재 발행 부수 80만 부로 줄었습니다. 스콜 플랜더 플레이보이 CEO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플레이보이의 국외판 등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감안하면 흑자지만, 미국판은 연간 3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플레이보이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이 잡지가 단순히 여성 누드만을 파는 잡지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보이는 지금까지 자와 할랄 네루 인도 총리,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 마틴 루터 킹 목사,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비틀스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스티브 잡스등 수많은 세계적인 인사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레이보이는 고품격 지성지입니다. ‘선정성과 지성’이 공존하는 잡지입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누드 없는 잡지로 변신하는 플레이보이의 미래가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제가 이민 오기 전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할 때입니다. 학교에서 어쩌자고 제게 학생부 선도계를 맡겼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좀 일찍 식사를 하고 음악실 곁에 있는 3층 제 사무실로 가고 있는데 한 3학년 교실 뒤편에 학생 7, 8명이 뒤엉켜 앉아 키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일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저도 학생들 머리 사이로 머리를 끼워 넣고 학생들이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여성의 누드 사진이었습니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제 얼굴을 보고서는 급히 뒤로 물러섭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합니다. “야!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불에 덴 메뚜기처럼 화들짝 놀라뛰었습니다. “책 가지고 모두 내 방으로 와!” 목소리를 좀 내리깔고 그 말만 남기고 저는 자리를 떴습니다. 학생들은 제 방으로 와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 죄를 지은 죄인 같은 표정들을 지었습니다.
“중3 놈들이 잘한다. 그래, 멋진 여자 벗은 사진을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하냐? 세상이 아름다우냐? 공부에 집중해야 할 놈들이 이런 데 한눈을 파니 공부가 될 리가없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이 아닌 여자의 몸뚱어리일텐데 이 일을 어쩌지? 너희도 다 때가 되면 한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여자에 관심을 가지면 공부도 공부지만 신체발달도 나빠진다. 제발 이런 이상한 사진 보지 마라. 그래, 이번만은 그냥 지나가자. 혹, 너희 가방 속에 그런 책이 더 있다면 다 버려라. 버리는 것이 어려우면 불에 태워버려라. 그 책 지금 너희에게 절대 도움 안 된다. 오히려 너희에게 독이 된다. 관심의 정도가 깊어지면 폐인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점심시간 좀 남았으니 운동장에 가서 농구나 한 게임하고 세수하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 준비해라. 나가 봐!” 그때 그 아이들이 봤던 책이 플레이보이였습니다.
종래 후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낮에 잡지를 보다 내게 들킨 아이들의 담임이 제방으로 왔습니다. 오십 대 초반의 언제나 정장 차림의 깔끔한 분이셨습니다. “배 선생, 우리 반 놈들이 이상한 책을 보다가 들켰다면서요?” “아, 네. 별일 아닙니다. 보고 있길래 제가 책을 빼앗았고 훈계 좀 하고 보냈습니다.” “도대체 그놈들이 본 책이 어떤 책이에요?” “이 책입니다. 플레이보이 잡지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많이 보지요. 여기 제 서랍 안에 빼앗아 둔 이런 책들이 이렇게 있습니다.” 플레이보이를 천천히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넘겨보던 그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자식들!
이런 책을 보다니 그러니 학급 성적이 그 꼴이지. 음, 배 선생 나 이 책 좀 빌려 가도돼요?”, “빌려 가시다뇨. 그냥 가지고 가세요. 원하시면 몇 권 더 가지고 가세요.”
오늘 제 서랍을 한 번 뒤져봐야겠습니다. (2015.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