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30일입니다. 내일은 10월 31일입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가요 ‘잊혀진 계절’ 속에 나오는 그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저는 지난 2011년 10월 마지막 주 컬럼을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은 ‘도대체 그해 시월의 마지막 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남자는 저렇게 소리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에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리고 ‘뜻 모를 이야기는 무엇이며, 헤어지고서 저렇게 소리소리 지를 일이라면 차라리 헤어지지 말았어야지’ 라고 빈정거렸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용 씨가 언젠가 TV에 나와 1년 동안 벌 돈을 이날 하루에 다 번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대한민국 전국에 있는 노래방이 아마도 한 곳도 빠짐없이 다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지난 8월 15일 광복 70주년 기념일에 사람들은 ‘광복절 노래’는 안 불렀어도 이 노래는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이용이라는 가수가 노래를 잘 불러서 유명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멜로디가 아름다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가사가 워낙 구구절절 사람의 마음을 울려서 그런 것인지? 그것에 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맨 먼저 가사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멜로디를 먼저 완성하고 가사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래로 작곡될것을 미리 생각하고 가사를 만들었다면 작사가 될 것이고, 그저 떠오르는 감정을 시의 형태로 표현하였다면 시가 될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어떤 기존 시에 곡을 붙였다면 그 노랫말은 작사가 아니고 작시가 될 것입니다. 가요 ‘잊혀진 계절’은 박건호 씨가 작사했고 이범희 씨가 작곡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날만 되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3요소를 작곡(작사 포함), 연주(노래 포함), 감상이라고 합니다. 연주(노래)를 제2의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가요 ‘잊혀진 계절’이 가수의 이름과 함께 이렇게 유명하면서도 정작 원 창작자인 작곡자와 작사자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들에 관해 조금 찾아봤습니다.
작곡자 이범희 씨는 1952년 출생으로 서울대 음대 출신이며 현재 명지전문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서울>, <잊혀진 계절>, <어느 소녀의 사랑 이 야기>, <독백>, <민들레 홀씨 되어> 등의 많은 히트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작사자 박건호 씨는 1949년 강원도 원주출생으로 젊은 시절의 가난과 1989년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 오른쪽 수족 마비를 겪으면서 힘들게 살다가 지난 2007년 5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건호 씨의 삶을 살펴보면 그가 쓴 가사들이 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69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서문이 실린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냈으나 옷 한 벌조차 사 입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탓에 작사가로 활동을 시작, 1972년 〈모닥불〉을 시작으로 〈잊혀진 계절〉, 〈아! 대한민국〉, 〈빙글빙글〉, 〈그대는 나의 인생〉, 〈토요일은 밤이 좋아〉 등 총 3,000여 곡의 가사를 썼습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순수시에 기초를 둔 그의 가사들은 감정의 부드러움과 절박함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삶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어 당대 최고의 작사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또 시인으로서도 꾸준히 작업하여 〈타다가 남은 것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 〈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 〈기다림이야 천년이 간들 어떠랴〉, 〈그리운 것은 오래전에 떠났다〉 등 10여 권의 시집과 에세이집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 〈나는 허수아비〉 등을 냈습니다. 그는 1982년 KBS가요대상 작사상, 1983, 1984년 KBS 제1, 2회 가사대상 대상, 1985년 한국방송협회 주최 아름다운 노래 대상, 1985년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으며 세상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가요 ‘잊혀진 계절’의 숨은 공로자들을 알고 나니 이제 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이제는 이 노래를 불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래도 슬픈 감정은 숨길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이 아픕니다. (2015.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