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편한 사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은혜를 깨닫고 살다 보면 누구나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마음을 실현하기 위해 실력을 쌓거나 직분을 맡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을 평가하거나, 반대로 평가받는 자리에 놓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번 읽었다는 ‘손자병법’과 ‘삼국지’의 다양한 인물에서, 지도자와 지휘자의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남들에 비해 뛰어난 특징과 실력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굳이 지도자의 위치가 아니더라도,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도 그 평가 기준이 비슷하게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용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보다 한 수 아래이며, 덕장도 운장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이해합니다. 성경 말씀을 옳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도 그 상식은 일반화되는 것 같습니다.
맹장(勇將)은 한 가지 확신에 따라 용감히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두른 용기도 주님의 뜻을 모르기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부탁하신 기도를 안 하고 자다가, 깨어나 보게 된 정황에 반사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지장(智將)은 지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는 지식이 믿음으로 적용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사울은 적을 알아 두려워했고, 다윗은 하나님을 알고 승리했습니다. 덕장(德將)은 관계를 잘 다스리는 지도자입니다. 예수님께 부하의 치유를 부탁한 백부장 같은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운장(運將)은 자기 실력보다 운(運)에 기대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모습을 모본으로 가르쳐 줍니다. ‘송장(送將)’입니다.
곧, 용맹과 지식, 덕 등, 사람의 인품과 실력보다, 내가 안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입니다. 용기, 실력, 인품 등 자신의 것도 안 보이고, 상급, 존경도 받지 않고, 하나님만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용맹스러운 투사, 뛰어난 전략가, 덕스러운 유명인보다, 주님이 더 편하고,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8-22절은 베드로가 맹장에서 지장, 덕장, 송장으로 변하는 마지막 과정입니다.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고 제자가 됐습니다. 남보다 용감해 보고, 남이 하지 못하는 고백을 처음으로 해 보고, 또 사랑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후, 비정한 마음으로 실패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행하고, 아는 대로 고백하였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늙어서, 남이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이끌립니다. 그리고, “네 팔을 벌리리니…”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립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 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이제야 주님의 띠를 띠고, 주님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리며, 주님의 뜻을 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었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들은 후, 건축 대신, 재료 준비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으나, 죽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성도의 헌신은 무엇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편히 쓰시도록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실력은 우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도의 승리는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선포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주님께 편한 성도로, 그래서 주님의 뜻을 함께 이루는 동역자로, 주님께 영광 돌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