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씨, C 씨 부부와 저희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N 씨는 한국에서 온 저의 고향 친구이고 C 씨는 라스베가스에서 가까이 지내는 이웃입니다. 이른 아침 출발과 함께 우린 젊은 시절에 들었던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이름 모를 소녀’ ‘Let it be me’를 들었습니다. 차창 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일행의 얼굴엔 미소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N 씨, C 씨 부부는 초면인데도 불구
하고 정말 오랜 친구처럼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노래를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문득 ‘음악의 감동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여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목적지는 세도나였습니다. 라스베가스에서 20년가량 살면서 세도나를 처음 가는 저의 삶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도나 산 중턱에 올라서는 순간 벨락 등 솟구쳐 있는 붉은 바위에서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단의 웅장한 사운드가 제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아하! 이곳에서 기(氣)를 받는다는 것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N씨는 출국 전 허리를 다쳐 복대를 하고 왔는데 세도나에 도착하는 순간 강하고 뜨거운 기운이 몸에 들어와 통증이 사라져 여행이 끝날 때까지 통증 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세도나(Sedona) 역시 세구나(Seguna)!”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에는 붉은 바위에서 나온 듯한 무지개같은 빛이 세 사람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놀랍기도 했고, 신비롭기도 했고, 이번 여행을 축복하는 듯했습니다. 이후 여행 중 찍은 그 어떤 사진에도 이러한 현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행 중에 그랜드 캐년, 에어포트 메사, CHURCH OF HOLY, 나바호브릿지, 홀슈 벤드, 엔텔로프 캐년, 캐년 랜드, 모뉴멘트 벨리, 메사 베르데 내셔널파크, 알치스 캐년, 브라이스 캐년 등 많은 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돌과 나무와 산과 계곡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좋은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 또한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C 씨는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집안이 너무 어려워져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으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먹을 것, 입을것이 없어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았다고 합니다. 결석을 밥 먹듯이 했고 퇴학당하지 않고 졸업한 것이 기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졸업 후 자신의 학생 생활기록부 사본이 필요해 발급해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총평란에 1학년 때 ‘불량함’, 2학년 때 ‘매우 불량함’ 3학년 때 ‘지극히 불량함’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학교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 표현이 정
확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번엔 N 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통지표에 ‘매우 산만함’을 받아와 어머니께 엄청 혼난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수년간 ‘매우 산만함’은 저의 족쇄가 되어 제가 혼날 때마다 어머니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궁금한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았는지… 저는 늘 산만하여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습니다.” N 씨 부인이 남편의 말을 거들었습니다. “이 이는 환갑이 지난 아직도 그래요. 끝없이 두리번거리고 또 뭔가 하나를 발견하면 그것에 빠지곤 해요.” 실지로 N씨는 여행 중에도 일행과 떨어져 혼자서 행동할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절벽 가까이 다가가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습니다. 생활기록부에 ‘매우 불량함’과 ‘매우 산만함’이라고 기재된 사람들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은 매우 즐 거웠습니다.
C 씨는 9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와 현재 당당하고 멋진 사회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어도 능숙하고, 정기적으로 마라톤을 즐길 정도로 신체도 건강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 며 자신감이 넘쳐 있습니다. 그의 ‘매우 불량함’은 양호하지 못한 불량한 환경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불량한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N 씨는 현재 한국에서 규모가 꽤 큰 건설회사의 대표입니다. 그는 타 건설업체에 비해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어 언제나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을 맺고 일을 해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많은 특허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산만한 성격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매우 산만함’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공로자라고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바위의 모양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계곡의 깊이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신비롭습니다. 사람의 환경도 꿈도 다 다릅니다. 불량함도 산만함도 결코 절망이 아닌 희망임을 깨우쳐준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2016.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