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 이민자는 죽음마저도 외롭다 - 배상환

April 2, 2026 by KCN

며칠 전 라스베가스에서 가깝게 지내던 한 이웃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한국으로 돌아가 운명할 수 있었지만, 저로서는 그의 떠나는 길을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민자는 죽음마저도 외롭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2005년 5월 제가 지휘하던 라스베가스 서울합창단의 제14회 정기연주회 ‘한국 가요 합창의 밤’을 마치고 특별 출연한 가수 장현 씨와 스프링 마운틴에 있는 그린 룸에서 얘기를 하는 중에 옆 테이블에 있던 한 남성이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연주 잘 들었습니다. 가요를 클래식 합창으로 연주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가수 장현 씨의 노래를 이곳에서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전상규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지방 명문대 공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에서 대우건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중동 건설 현장 경험도 있었습니다. 미 8군에서 군대생활을 했기에 영어를 잘했고 가족 초청으로 두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 시카고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장성한 남매의 사회 진출과 함께 은퇴를 겸해 라스베가스로 와 작은 선물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합창연주회가 인연이 되어 우리 두 부부는 가끔 만났습니다. 그는 한때 서울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 있어 참 많이 달랐습니다. 좋아하는 정치인과 정치 성향도 달랐고 취미도 달라 그는 골프를 좋아하고 저는 바둑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경제와 역사 부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저는 그저 예술에 관해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린 이렇게 전공과 취미와 관심이 달랐음에도 늘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만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어떨 땐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구나!’” 혼자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 대학 불교학생회장을 지낼 정도로 불심이 깊으면서도 제가 믿는 기독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창립 기념예배에 참석해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늘 책과 가까이했습니다. 이민생활의 고독함을 독서로 달래는 듯했습니다. 우린 또 제가 쓰는 신문 컬럼에 대해서도 종종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로서는 제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에게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을 때에도 불심이 깊었기에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 그는 지난 가을 사랑하는 아내를 딸이 사는 곳으로 혼자 이주케 하고 본인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학 시절 즐겨 찾았던 큰 사찰 가까이에 숙소를 정하고 병원 치료와 함께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일에 힘쓰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십여 년간 라스베가스에서 살았던 한 이웃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일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친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죽음은 산 자의 행사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가 죽은 자의 삶의 흔적들을 지웁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느낍니다.

저는 지난 연말에 썼던 컬럼 “나는 몇 번이나 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제게 남아 있는 생의 날도 결코 많지 않은 듯합니다.

외로운 이민생활, 고독한 이민생활, 힘든 이민생활. 우리의 죽음까지 외롭고, 고독하고, 힘들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해야겠습니다.

전상규 씨가 평소 즐겁게 외우던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좀 길지만 전문을 오늘 그의 영전에 올립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2016.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