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나온 영화 중에 3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300명의 용사들이 100만 군대와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나오는 이 300명의 용사들을 보면 굉장히 용감한 모습들 뿐입니다. 전투에 나가서 싸우다 죽게 되어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외칩니다. 성경에 있는 사사기라는 책에 보면 많은 전투와 싸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드온의 이야기를 할겁니다. 마치 그 영화의 내용처럼, 300명의 용사들을 데리고 미디안의 13만 군대와 싸워 승리한 이야기가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300이라는 영화에 보면 300명의 용사들의 겁없는 용감한 모습을 보지만, 그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이 300명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입니다. 300명의 용사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 그들의 마음을 휘어 잡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한치의 두려움도 어디서 찾아 볼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 영화속에 나타납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미디안 군대와 싸운 리더입니다. 이런 어마한 일을 감당한 기드온이니깐 당연히 용감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런 모습을 생각하게 될겁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원래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영웅이 될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게다가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에 소개되는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 기드온은 평범한 겁쟁이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루는 밀을 타작합니다. 밀을 타작하는 것은 넓은 곳에 밀을 쭉 펼쳐 놓고서는 툭툭 쳐서 밀이 떨어지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소개되기를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다라고 합니다. 포도주 틀은 얕은 수영장 같은 곳입니다. 보통 그곳에 포도를 부어 놓고 발로 밟아서 즙을 짜내는 곳이 포도주 틀입니다. 일반적으로 밀을 타작하는 장소에 비교하면
굉장히 좁고 힘든 곳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넓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디안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 그렇게 했던겁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빼앗아 가고 약탈했습니다. 기드온이 타작하고 있는 밀도 미디안 사람들이 보게 되면 빼앗아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드온은 몰래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것이죠.
한마디로 겁쟁이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과는 맞서 싸울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겁쟁입니다. 이런 기드온을 찾아와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평범한 겁쟁이를 부르시는데 성경에 보면 처음 기드온을 부르실때에 큰 용사여 라며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기의 처한 상황만 보면서 겁쟁이의 모습으로만 반응합니다. 그런 기드온을 하나님은 계속해서 부르셔서 결국 그 겁쟁이가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나아가는 멋진 용사가 된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이러합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은 겁쟁이로 우리를 만들어갈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도록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겁쟁이도 변화시켜 용사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여전히 부르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용사로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여러분의 삶을 한번 맡겨 보세요. 예배와 말씀과 교회를 통해 우리를 용사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분명히 함께 할 것입니다.
겁쟁이 기드온을 변화시켜 주신 것처럼, 나도 하나님이 변화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들 겁쟁이였지만, 결국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알래스카에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겁쟁이들이 변화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